평소에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럴때 마다 어려움을 느낍니다. 글의 앞뒤 상황 문맥을 모르는 상태에서 번역을 하게 되면 직역할 수 밖에 없는데, 직역을 하려고 하다보면 빠져있는 내용이(주어, 목적어) 많음을 느낍니다. 왜 사람들은 글을 명확하게 쓰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했습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번역을 부탁받는 내용은 대부분 기술적인 내용을 정리하는 문서의 일부이거나 비즈니스를 위한 서신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술적인 내용을 정리하는 문서나 비즈니스를 위한 서신의 내용은 분명히 내용이 명확하게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는 글을 쓸때 굉장히 명확하게 모든 상황이 설명되는 글을 쓰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용이 쓸데 없이 자세해서 읽기 불편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오히려 글을 간단하게 쓰면 잘 썼다고 칭찬을 받을 정도입니다.


어쨌든, 오늘 어떤 논문을 읽게 되었는데 High Context Culture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용어로 우리가 한글로 글을 쓸때 좀처럼 명확하게 쓰기 힘든 이유를 어느정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igh Context Culture는 이와 상반된 Low Context Culture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되고 있고, 이 용어들은 1976년 Edward T. Hall이라는 인류학자가 Beyond Culture라는 책을 통해 처음 사용한 용어라고 합니다. High와 low라는 단어가 들어감에 따라 이 용어들이 문화의 우월함, 열등함을 나타내는 그런 용어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것은 아닙니다. 어떤 문화에서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서로 주고 받는 말에 context, 즉 상황에서 알 수 있는 맥락이나 전후 사정이 많이 고려되는지 안되는지 정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문화는 High Context Culture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그 상황의 맥락이나 전후 사정이 많이 고려되는 상태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문화 입니다. 따라서 주어, 목적어가 많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영국과 미국은 Low Context Culture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Context가 많이 고려되지 않는 그런 문화 입니다. 따라서 비교적 명확한 의사 소통을 하게 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일상 생활속에서 둘이 대화를 나눌때 무엇을 달라고 부탁할때 "그것 좀 줄래?" 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영어로 말할때는 특별히 화가 많이 나서 무엇인가 뺏어가는 상황이 아니면 "Give me that."이라고 말하지 않고 "Can you give me that?" 이라고 말하는것 같습니다. 두 언어로 모두 간단한 형태의 문장을 사용해서 의사 소통을 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 할때는  "You"라는 정보가 추가적으로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쉽게 말해서 이런 예 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빼놓고 언급하지 않는 말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격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러겠죠...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니?"


농담이고요... 어쨌든, 제 요지는 이런 간단한 경우에는 번역에 큰 지장이 없지만 상황이 복잡해지거나 문장이 사용된 전후 맥락을 쉽게 알 수 없는 상황속에서는 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번역을 도와주면서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글을 그렇게 명확하게 쓰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그 이유가 우리나라 초등 교육이 글 쓰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것 보다는 그냥 문화적인 차이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유명한 작가들의 글도 저는 사실 어렴풋이 읽어보면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이해가 안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저는 유년시절과 대학생활을 미국에서 보내서 그런 High Context Culture에 익숙하지 않아 글의 전후 맥락을 보고 눈치껏 재빠르게 이해해야 하는 능력이 제게 부족해서 그런가 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문화 자체가 High Context냐 Low Context냐를 두고 우월함이나 열등함을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문화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어떤 정보나 사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글들은 Low Context Culture에서 글로 표현하듯이 조금 더 명확하게 써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특히 공학 분야에 몸담고 계신 분들은 명확한 의사 소통을 위해서 이 점을 염두하고 글을 명확하게 쓰는 훈련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Posted by Dansoon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