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현충일을 맞이하여 국립 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단지 현충일이라 갔었던 것은 아니고 한국 전쟁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현충원에 안장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건강하실때는 그래도 매년 현충일 전이나 후에 주말에 진척들이 모두 모여 현충원에 그나마 일년에 한번이라도 가고는 했는데, 지금은 누가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년부터 혼자라도 할아버지의 묘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할아버지 잘 모릅니다. 아버지께서 태어나신지 얼마 안되어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그런지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워낙 무뚝뚝한 아버지의 집안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할머니와 두분의 큰아버지들로 부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은 것이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어쩌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가족들이 힘들게 살아온 세월동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어딘가 저편에 묻어두고 열심히 사느라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얘기는 안꺼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나마 사촌 형이 할아버지 사진을 어디서 찾았는지 사진을 찍어서 보여준 적이 있어서 얼굴만 어렴풋이 알고 있고, 제가 고등학교때 미국에 계신 작은 할아버지(할아버지의 동생)께서 한국에 방문하셔서 할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들려주셔서 할아버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충원에 가는 길에 저는 문득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는게 많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요새 할머니께서 기억도 많이 안좋아지시고 그래서 앞으로 할아버지에 대해서 알려줄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뭔가 제 뿌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한국전쟁을 거친 세대와 같이 사는 세대라서 어쩔 수 없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제가 살아온 30여년의 세월동안 제게 할아버지에 대해서 그 누구도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과 저도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유전적인 측면에서 보면 조상은 후대의 거울이라는 말이 어느정도 들어맞는다고 말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의 조상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어떤 가치를 위해 살았는지 알고 조상들의 뜻을 이어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저는 나중에 자식들이 생기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오셨는지 그리고 저는 부모님으로 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말해주고 그들이 저와 부모님을 거울삼아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쩄든, 지하철을 타고 가서 동작역에서 내렸습니다. 현충원으로 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만원짜리 꽃다발을 사들고 할아버지 묘까지 걸어갔습니다. 오늘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 처럼 느껴졌는데, 할아버지의 묘는 한참 위쪽에 있어서 묘에 도착하니 옷이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할아버지 묘 근처에서 찍은 현충원 전경 - 2011년에 찍었음>



매번 올때마다 묘비 옆에 꽂혀있는 꽃병에 물을 떠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데, 근처에 물을 떠올 장소가 화장실 밖에 없는데 화장실의 세면대가 작아서 꽃병에 물을 넣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집에서 1.5리터 PET병에 미리 물을 담아서 가지고 갔습니다. 그래서 꽃병에 가지고 갔었던 물을 넣고 꽃을 고이 꽂았습니다.



올때마다 "할아버지는 경감(군인이 아니라 경찰이셨습니다)이셨고,  순창에서 1953년 3월 29일에 돌아가셨구나..." 라고 알게 되고 돌아가지면 항상 까먹습니다... 이번에는 부디 잊지 않아보기를 희망합니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고 할아버지 묘비 앞에서 잠시 추모의 기도를 드리고 유독 우리 할아버지 묘비에만 새똥이 두군데 떨어져 있길래 그거 닦아드리고 왔습니다.


어릴때 부터 미국에 있었던 시간들을 제외하면 매년 왔던 곳인데, 머리가 조금 크고 어떤 곳인지 알게 되면서 부터 괜히 엄숙해게 있다가 가야만 할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랬는지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현충원에 온 사람들의 표정들도 모두 한결같이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굳이 저 혼자 엄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작년부터 느꼈습니다.


현충원에 안장된 많은 사람들이 각자 어떤 사연으로 현충원에 안장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할아버지께서 한국전쟁 때 전사하셔서 그런지 할아버지와 같은 분들 덕분에 자유롭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이런 사상 자체는 애국심을 중심으로 군사 활동의 정당성을 자유 수호에서 찾는 그런 미국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틀린 생각은 아니라고도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 전쟁에서 싸운 분들께 감사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자유를 만끽하고 즐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따라서 너무 엄숙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작년에 현충원에서 목격했던 한 장면을 또 올려봅니다.


 

현충원은 엄숙해야 하는 그런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시절이라면 누가 현충원에 개를 데리고 오냐고 질색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이 바뀌니 주인이 끌고 가는 케리어 가방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개를 보니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충일을 맞이해서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본 하루였습니다...


Posted by Dansoon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