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삶에 대한 고찰...
할머니께서는 당뇨를 앓고 계시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치매는 아니라지만 치매 증상을 보이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할머니께서는 자기 몸을 돌보실 수 없는 상태이며 24시간나 돌봐드릴 사람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인 요양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부모님께서 올라오셔서 부모님과 함께 할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본인이 왜 요양원에 와 계신지도 잘 기억 못하시고, 그곳이 요양원인지도 잘 모르시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건강하실때 마지막으로 뵈었던 때도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에 대학생 때 였음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한 기억은 애기때의 기억밖에 없으셔서 언제 이렇게 컸냐고 그러십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가면 저를 알아보시는 것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찡합니다.
1시간동안의 짧은 면회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와 같이 말씀을 나누다 보면 본인이 하신 말씀도 10분 정도만 지나면 잊어버리시고 똑같은 질문만 계속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어차피 나도 이렇게 늙어서 기억을 잃게 된다면 현재의 삶에 대한 기억이 중요할까? 그런 측면에서 좋은 기억, 즉 추억을 만들려고 하는 내 자신의 노력은 헛된 것일까? 도대체 기억이 우리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크게 이런 질문들을 제 스스로에게 던져봤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인간 더 나아가 인류에게 두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기억을 자기가 겪었던 일이나 보고 들은 것을 Fact로 받아들이고 이 정보를 나중에 다시 머리 속에서 되살릴 수 있는 능력으로 바라봤을때 기억은 인간이 문명을 이룩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요소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지식은 계속 축적 되었고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문명은 계속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오랜 역사를 바라볼때 문명이 훨씬 발달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준으로 보면 그 당시의 삶은 지금 보다 좀 불편 했을지 몰라도 우리가 10년 전에 그냥 그런대로 그때의 삶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았듯이 그 당시의 사람들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기억을 통해서 문명은 발전 했고 문명의 발전을 통해 사람들은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편하게 살게 되었지만 기억이 문명 발전의 중대 요소였다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개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기억을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여 나중에 머리 속에 정보를 되살리는 것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머리속에 어떤 정보를 저장해 뒀다가 나중에 다시 끄집어낼 수 있는 그런 능력에만 그쳤다면 우리는 Star Trek에 나오는 Vulcan족 처럼 참으로 무미 건조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기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문명은 발전 했겠지만 그 문명은 무미건조한 과학적 문명의 발전에 그쳤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억을 하는 능력도 있지만 그 기억에 자신이 가진 감성을 그 기억에 부여합니다. 이 말은 위에서 말한 기억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측면에서의 기억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사람이 기억에 감성을 부여하게 됨에 따라 그 기억은 전혀 새로운 기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기억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기억에 감성을 부여하는 능력은 사람의 문명을 더 풍요롭게 해줬습니다. 기억에 감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자신이 좋았던 것 싫었던 것이 결정 되고, 그 사람의 취향이 결정됩니다. 이런 각자의 감성이 부여된 기억을 사람들은 서로 공유하게 되고 서로의 기억속에 남은 상대방의 기억은 또 다시 각자의 감성에 의해 다른 발전된 형태의 감성이 형성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감성이 부여된 기억을 공유하게 됨에 따라 우리의 자아가 형성 되고, 사회적인 존재로 발전해 갑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의 감성은 계속 풍부해지고 따라서 우리는 예술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술의 주된 주제가 되기도 하는 사랑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억에 좋은 감성을 부여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우리의 머리속에 오래 남아 그 기억을 통해 느꼈던 감성을 되살릴 수 있게 되고, 때로는 간접적으로 경험한 좋은 것들 까지도 기억의 형태로 머리속에 담아두어 우리가 느껴보지 못했던 감성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런 능력을 통해 우리는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전에 느꼈던 감정을 기억을 통해 되살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큰 축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불행일 수 있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은 삶의 자세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Up이라는 Disney Pixar의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보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보고 참 슬픈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 할아버지는 유년시절에 만난 단짝 친구와 성장하면서 같이 미래에 대한 꿈도 꾸고 결혼해서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갑니다. 그런 식으로 분명 할아버지의 기억속에는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추억)들이 생생하게 남겨졌겠죠.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먼저 병들어 죽고 결국 둘이 같이 꿈꾸던 꿈은 이루지 못합니다. 분명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같이 꾸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그동안 같이 꿈을 이루리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희망이 한순간에 사라졌을 것이고, 같이 보낸 좋은 추억들을 머리 속으로는 되살릴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와 비교가 될만한 것은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큰 좌절감을 줬을까요? 실제로 애니메이션에서도 할아버지는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십니다.
하지만 결국 둘이 꾸던 꿈을 혼자 이루고자 하면서 그 꿈을 막상 이루고 나니 기대 했던 것과 달랐고, 목숨이 오가는 그런 경험을 하면서 그 좌절감을 극복 하기는 하지만, 제가 할아버지의 입장이 된다면 참 많이 힘들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기억들을 통해서 고통받게 된다면 우리 할머니 처럼 기억력이 나빠지는 편이 오히려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옛날에 좋은 기억들은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잘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이 오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요지를 정리해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았던 기억들을 기억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내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추억을 같이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기억이 오락가락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잠시 지금 좋은 추억들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그리고 외로운 만큼 제가 요새 고민하는 것이 연애다 보니 어떤 여자를 만나느냐에 대한 고민에 제 생각을 투영해 본다면, 그냥 아무나 괜찮은 사람이랑 결혼해서 그저그런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더 좋을지, 아니면 오래 걸리더라도 정말 좋아해서 평생 살면 같이 행복할것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고민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역시 좋은 추억은 나중에 Up에서 나온 할아버지 처럼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도 하지만은 살아가는 인생의 긴 여정에서는 그만큼 값진 것은 없을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했지만 좋은 추억들 때문에 가슴아프게 사는가 마는가에 대한 문제는 그 시점이 왔을때의 마음자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늙어서 추억하면서 슬퍼할 일 없는것도 참 슬픈 일인것 같기도 하고...
쓰다보니 또 제 의사가 잘 전달이 안될것 같지만...
Star Trek에서도 그렇게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만한 Vulcan족 외교관이 인간과 결혼해서 Spock을 낳게 된 것도 모두 인간들만이 가지고 있는 이런 감성적인 매력 때문이었을 겁니다...
'My Life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TEDxSeoul에 다녀오다... (4) | 2012.05.28 |
---|---|
Season Day 둘째날 (3) | 2012.05.27 |
Season Day 첫날 (2) | 2012.05.26 |
About relationships... (2) | 2012.05.23 |
I've grown another habit... (2) | 2012.05.22 |
선정릉 나들이, 그리고 맛있는 오디차~ (0) | 2012.04.19 |
새벽에 지구대 다녀오고 대한민국 경찰에 실망하게 된 사연... (2) | 2012.04.15 |
운동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The Ridiculously Photogenic Guy를 보며!!! (2) | 2012.04.11 |
거의 한달 동안 꾸준히 달리기를 한 결과는? (8) | 2012.04.05 |
원하는 길을 택했지만, 그 길을 이렇게 가고 싶지는 않았다... 푸념 그리고 당부 (19) | 2012.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