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로써 바라본 이건희 회장의 퇴진...
My Life/Just a Thought :
2008. 4. 22. 23:57
서론
오늘 아주 전세계적(?)으로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최소한 뉴스에서는 그런식으로 보도하고 있는것 같다. 바로 삼성 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본인 스스로 퇴진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여러분은 놀랐는가? 최소한 나는 외국의 블로그나 뉴스를 통해서 그럴 가능성이 어느정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진짜로 퇴진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뉴스에서는 떠들어댄다. 심지어 본사의 몇몇 여직원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고, MBC 뉴스에서 본 삼성 직원의 인터뷰에서는 훌륭한 리더가 퇴진한다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삼성특검의 결과에 대해서 어느정도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 기대도 모두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건희 회장의 퇴진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것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의아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내 개인적인 생각을 좀 말해보기에 앞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당부의 말씀 한가지...
이 글은 정확한 정보가 아닌 개인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쓴 글이므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있을 경우에는 악플을 달기 보다는 사실과 다른 부분을 리플로 지적해주는 정도로 끝내주었으면 합니다.
일단은 이건희 회장의 퇴진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쪽임을 밝힌다. 그 이유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절대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가 싫어서도 아니고, 계열사간의 자금 순환 출자를 문제 삼고 싶어서도 아니다. 경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해서 그런것에 큰 관심이 없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영권 승계나 순환출자가 자본주의 시장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것 쯤은 알지만 그것 역시 시장의 원리에 맞기면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건희 회장의 퇴진에 ㅡ.ㅡd 하는 이유는?
본론
그 이유는 바로 조직 문화 개선의 새로운 가능성이 생겼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개선되어야 할 조직 문화란 어떤것인가?
1. 수직적인 관계가 중요시되는 조직문화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절대자가 있는 조직에서는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수직적인 관계가 더 중요시 되는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삼성 임원들 또는 계열사간의 관계에 관해 나도는 소문을 들어보면 대부분 라인 싸움이다. 줄을 얼마나 잘 서있는가에 따라서 하나의 사업부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것 같다.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이런 현상은 다른 사무를 맡은 곳에 있는 사람들 보다는 약간 덜한것 같기도 하지만 엔지니어도 승진하면 임원이 되고 언젠가는 경영에 직접 관여하기 때문에 결국 엔지니어들도 줄서기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부서간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있는 부서 힘이 없는 부서가 나뉘어져 부서간에 서열이 정해진다. 이런 줄서기와 편가르기 때문에 회사 정책 판단이 흐려지고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것 같다. 아무래도 조직이라는 것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려면 수직적인 체계가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수직적인 관계 보다는 수평적인 관계가 더 보편적이라면 회사 내부적으로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때 더 객관적인 판단이 이루어질 것 같다. 권위와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경쟁 체제에서 말이다.
2. 업무 진행 문화
엔지니어로써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부분이다. IT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야근에 시달리고 있을거라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각이다. 우리회사는 IT 업종에 해당하는 회사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ASIC을 이용한 디지털 회로를 설계하고 그 회로를 동작시키는 software인 firmware가 들어간다는 측면에서 IT 업종에서 하는 일이랑은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바로 AISC을 설계하고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우리 부서는 야근이 잦다. 하지만 야근하는 것에 비해 나오는 결과물은 극히 저조하다고 본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서화 작업 소홀, 업무분담의 실패, 유동적인 인력 활용의 실패, 그리고 정교한 설계 과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받은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들의 마인드는 "일단 어떻게든 만들어놓고 보자"이다. 어디를 가나 이것이 기본적인 엔지니어들의 마인드인것은 맞지만, 일단 만들어 보고 그 다음에 행해져야 할 중요한 일들이 행해지고 있지 않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일단 어떻게든 만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에 필요한 조건(requirement)들을 정리하고 차후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정교하게 설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들의 업무 문화 속에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기술과 경험을 정리하고 차후에 적용하는 연습이 부족한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설계 과정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얕아서 그런지 인력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업무 분담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것 같고,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져서 인력도 유동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것 같다. 가령 업무 분담이 세분화 되어있고, 명확히 정의 되어있으면 계약직을 고용하여 업무를 진행시키거나 외주를 주는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건 거의 없다. 이것은 엔지니어들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엔지니어들을 자기 멋대로 휘두르는 경영진의 문제일 수도 있다. 시장 선점이 중요해서 그런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자주 듣곤 하지만, 덕분에 우리 회사의 기반은 잘 잡혀있지 않은것 같다. 그렇다고 기술이 없는건 아니다. 다만 정리가 안되어있고, 그 기술들을 사용해서 정교하게 설계를 못하는것 뿐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3. 근무 태도
야근이 잦아지다보면 야근이 당연한것이 되어버린다. 우리부서 같은 경우는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된다. 야근이 일상이 되다보니 정규 근무시간에 그만큼 소홀해지는것 같다. 물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지만, 여기서는 언급하고자 하는것은 근무 태도 자체이므로 더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그냥 웹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많이 떼우는 일도 종종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편에 속한다. 야근이 당연시 여겨지다보니 시간은 떼워야겠고, 집에는 가고 싶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잠깐잠깐씩 웹서핑을 하게 된다. 그런 고질적인 야근문화의 또다른 부작용으로, 자기 할일 다 하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은 일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지게 된다. 실제로 상사들은 근무시간에 대충 시간 떼우다가도 늦게까지 야근하는 사람을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해서 자기 할일 다 끝내고 퇴근하는 사람보다 더 좋아하는것 같다. 어쩌면 근무시간에만 열심히 일해서 일을 끝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유가 어찌됐건간에 두 경우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4. 지켜지지 않는 규칙, 그리고 불명확한 기준
어떤 조직에서나 그 조직내에서 지켜야할 규칙이 있다. 어딘가에 기록되어있기도 하고 불문율로도 존재한다.하지만 불문율로 존재하는 규칙은 강제력을 행사하기 힘들다. 그래서 체계적이고 원활하게 돌아가는 조직일수록 규칙은 간략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정리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규칙이나 그 규칙을 따르기 위한 지침서나 그 규칙을 따르지 않았을때에 받을 처벌에 대해 명확히 서술해 놓은 것이 없는것 같다. 따라서 규칙을 따르기가 힘들고, 그 권위는 바닥에 붙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규칙은 지키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규칙은 남에게 강요하는 좋지 않은 국민적 성향이 강한것 같다. 그리고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또 하나의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급하기 좋아하는 "인정"이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친한 사람끼리는 인지상정이라고 하여 규칙을 어기더라도 눈감아주기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나도 그것 때문에 덕을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조직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크게 위의 네가지로 정리해봤다. 물론 모든것을 일반화 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평을 하면 어디를 가든지 마찬가지라고 한다.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보려고 해도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좀 심한 편인것 같다.
결론
그렇다면 결론으로 들어가서, 내가 이건희 회장의 퇴진이 왜 삼성의 조직문화 개선의 기회가 될것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정리하겠다. 전세계적으로 봤을때 글로벌 기업이라고 자청하는 회사 치고서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업처럼 임원진의 혈통의 핏줄이 순수한 기업은 아마 없을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기업의 경영권 승계 때문이거나 우리나라 국민들 특유의 외국에 대한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인것 같다.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유하는것이 더 중요한 우리나라. 그것이 그동안 외국의 훌륭한 전문 경영인들의 진출을 가로막았던것 같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국민의식도 많이 성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옛날부터 존재하던 고질적인 나쁜 조직문화가 자연스럽게 계속 전해져 내려오는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동안 이건희 회장은 경영 혁신을 통해서 삼성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실제로 이건희 회장의 경영 혁신 활동의 결과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분이 한 그룹의 회장으로 있었던 동안의 결과만 본다고 칩시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건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조직 내에 남겨진 낡은 문화가 조직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아마도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치중했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동안 삼성이 이룩해온 성과를 이룩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봤을때는 그동안 조직문화가 개선되지 못한 점이 아쉽고, 앞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퇴진을 계기로 내가 기대하고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삼성 그룹의 계열사들은 이제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할 것이고, 그룹 자체 내(내가 기대하는대로 이루어진다면 이젠 어쩌면 그룹의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의 구조조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각 계열사가 독립적인 기업이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순환 출자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고, 기업의 혁신과 이익 도모를 위해서 해외의 능력있는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외국의 전문경영인의 영향으로 조직 내의 문화도 슬슬 미국이나 유럽의 대기업의 문화로 차차 변화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의 인력 고용시장(job market)도 조금 유동적으로 변하고 대기업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도 줄어들어 중소기업들의 입지도 차차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물론 내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삼성의 많은 계열사들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확대해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조직도 그럴것이라고 섣불리 일반화시킨 경향이 없지않아 있지만 공감하는 사람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조직사회를 바라봤지만 내 스스로도 반성할 기회를 가졌으며, 건방진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도 혹시 자기도 그러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기 바란다. 삼성 하나가 이렇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길 바라는것 또한 너무 큰 바램인것도 알지만 그래도 기대해 본다...
P.S.
쓰고보니 엔지니어가 아닌 측면에서 바라본 내용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뭐든것이 체계적이고 정해진 규칙대로 돌아가는걸 좋아하는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바라봤다고 생각하면 또 그럴수도 있는 얘기일 수도 있기도 한것 같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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